당산봉·용수리 유적...당산봉과 문도지오름 중턱에 선사시대 고인돌 추정 바위
지방문화재 지정된 액막이 방사탑 한쌍...용수포구서 조선 첫 미사 올린 김대건 신부 기리는 해안도로
▲당산봉이 품은 선사시대의 유물과 유적
고산리 자구내와 이웃하는 당산봉 남서쪽 중허리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 이곳에는 고인돌로 보이는 바윗돌 두 개가 이웃하고 있다. 길이 약 3m, 폭 2.5m, 두께 1.5m 정도의 두 바위는 당산봉 도처에 박혀 있는 암석들과는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어, 주변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제주 최초의 마을이 자구내 뜬밭에 들어선 점으로 보아, 이 바위들은 마을 지도자의 무덤인 고인돌이라는 추정이 지역에서도 전해 오고 있다.
차귀현에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들이 또 있다. 이곳 고인돌은 받침돌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반면, 인근 마을인 저지리에 위치한 문도지오름 중허리에 있는 고인돌로 보이는 바위에는 받침돌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선사유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 7만여 기가 있다는 고인돌 중 절반 이상인 4만여 기가 우리나라에 있다고 한다. 고창 고인돌 군락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제주도에 등재된 고인돌은 100여 기이다.
1950년대 기록에 의하면 제주시 용담동 일대에 3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10기 정도 남아 있다. 이로 보아 제주도에는 수백 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발굴된 선사 유물들 또한 이 암석이 고인돌일 가능성을 높여 준다. 1970년 서울대학교 임효재 교수 등은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 근처(2651번지)에서 수습된 석기 및 토기편들이 선사시대의 유물임을 학계에 처음 발표하였다고 고산리 향토지(2000년)는 전한다.
1985년에는 제주대학교 이청규 교수팀이 이곳에서 무문토기와 마제대팻날 등의 유물을 채집하였는데, 이러한 종류의 석기는 삼국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유물로, 탐라시대 전기의 도내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고산리 788번지에서는 토기와 동물뼈 파편이 혼합된 점토층과 신석기 토기편 등이 수습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곳은 동굴집자리로 추정된다고 관계자는 발표하기도 했다.
▲바닷가 마을 용수리
당산봉 동북쪽에 이웃한 용수리에도 제주역사문화를 담은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자그마한 마을에 커다란 배를 닮은 성당이 들어서 있고,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방사탑 한 쌍은 차귀도를 바라보며 제주 바다를 지키듯 서 있다.
특히 바다에서 죽은 남편을 따라 절벽 나무에 목맨 제주고씨의 전설과 같은 얘기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절부암(節婦岩)에 실려 전해진다.
용수리의 옛 이름은 고문헌에 지삿개(瓦浦), 벗개(友浦), 군영개(軍營令浦), 범질포(犯叱浦)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와포 또는 지삿개라는 이름은 포구 근처에서 기와(지새는 기와의 제주어임)를 구운 데서 그리고 기와를 해상으로 운반했던 포구라는 데서 유래한다.
차귀현과 대정현의 여러 곳에 있는 노랑굴과 검은굴에서 생산된 기와와 옹기 등을 육로로 용수포구로 운반하고는, 해상을 통하여 제주 전역으로 실어갔다고 고서는 전한다.
1679년(숙종5) 목사와 현감의 비행을 조사하고 한라산신제를 지내려 제주에 온 어사 이증(李增)이 쓴 ‘남사일록(南槎日錄)’에는 “제주순무어사인 이선(李選)이 1675년(숙종1) 입도하여 ‘우두연대가 있는 벗개를 살펴보니, 차귀진은 여러 여건이 적합한 지형인 벗개로 이설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진성이 (우포로) 이설되지는 못했지만, 우포는 여전히 군령포로 군사를 주둔해야 할 요지이다.
우포의 우두연대는 대정현 서쪽 25리에 있고, 동쪽은 서림연대와 서쪽은 두모연대와 교신을 주고받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용수리 포구 좌우에는 오래된 방사탑이 고고하게 바다와 육지를 응시하고 있다. 바닷물이 닿는 암반 위에 쌍으로 조성된 돌무더기 탑은 크고 작은 돌들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로 이뤄져 있다. 방사탑 이름을 ‘매조재기탑’이라 지은 선인들의 작명이 궁금하다.
매조재기란 이름은, 돌탑 위에 앉은 매가 조지래기 즉 바르고 우뚝하게 앉아 있다는 뜻을 담은 제주어로, 바다에서 오는 재앙은 돌탑이 막고 공중으로 오는 재앙은 매가 막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 바다에서의 사고로 시신들이 용수리 바닷가로 적지 않게 올라왔었는데, 방사탑을 쌓은 후로는 그러한 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전한다.
제주도민속문화재 제8-8호와 8-9호로 지정된 용수리 방사탑은, 마을에 닥칠지 모를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함과 아울러 마을 공동체의 화합과 단결을 선도하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조선 최초로 미사 올린 마을에 조성된 김대건신부로
한경면 용수리와 신창리 사이에 있는 ‘김대건신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1822~1846) 신부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해안도로의 이름이다.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라파엘호를 타고 첫 포교지인 충남(강경·논산)으로 가다 풍랑을 만났다. 다행히 용수포구에 기착한 신부 일행은 이곳에서 첫 미사를 올렸다.
천주교 제주교구에서는 제주선교 100주년인 1999년 김대건 신부가 타고 온 라파엘호를 복원하는 한편, 기념성당과 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이곳에 성지를 조성하였다. 유네스코에서는 2019년 김대건 신부를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참된 삶의 가치를 줄 수 있는 인물인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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