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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흡 선생의 제주인물 대하실록) 추사도 칭찬한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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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2022. 1. 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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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점(吳霑) 송설체·금석서에 독보적 솜씨…1827년 제주향교 이설 자문도

 

오점의 유필 일부. 오점은 송설체를 중시해 썼으며 금석서에 독보적인 존재였다. 문장력도 뛰어나 이름을 날렸다.

1764(영조40)~1856(철종7), 문인, 서예가, 서당 훈장, 자 시지(時之), 호 청파(靑坡), 본관 화순,

1786년(정조10) 사마시에 합격, 1794년(정조18) 어사 심낙수(沈樂洙)에 의해 시행될 때 논(論)에 3등, 부(賦)에는 2등을 했다.

오점의 아들 소림(小林) 오태직(吳泰稷)도 사마시에 급제, 손자 연와(蓮窩) 오경로(吳卿魯)도 시문에 능해 3대에 걸쳐 문명(文名)을 떨쳤다.

1827년(순조27) 겨울 제주향교를 비룡못(飛龍池) 근처인 현 위치로 이설할 때 도감(都監) 정원집(鄭元集), 장의(掌議) 현언범(玄彦範)과 김응길(金應吉) 등을 잘 움직여 자문에 응했다.

글씨를 잘 써서 유배온 추사(秋史)도 그의 필법을 칭찬했다고 한다.

송설체(松雪體)를 중시해 썼으며 금석서(金石書)에 독보적인 존재였다. 또 문장력이 뛰어나 한때의 공사문(公私文)이 그의 솜씨에서 이루어졌으며 연상루중수상량문(延祥樓重修上樑文), 망경루개건상량문(望京樓改建上樑文) 등이 현재 전해진다.

한정운(韓鼎運) 목사 때에 쓴 글씨 동문상량문(東門上樑文)도 현재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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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추사도 칭찬한 글씨…명필·명문으로 이름 날려 - 제주일보

▲오용국吳龍國:1904(광무8)~1950(납북), 정치가, 국회의원, 해방 후 효돈수리조합장 역임.6·25에 의해 서울에서 납북당했다. 서귀포시 신효리(쉐둔)에서 오방률(吳邦律)의 아들로 태어나 1940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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