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제주인> 김태형 효성굿스프링스 대표이사
중동 두바이에서 10년 재직…아프리카 해외 시장까지 개척
탁월한 영업 활동 인정받아 40대 중반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
“제주청년들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멘토링 역할 맡고 싶어”
1980년대 ‘수출 한국’을 일궈낸 수출의 역군은 ‘상사맨’이었다.
이들은 오지든 망망대해든 가리지 않고 해외로 나갔다. 1980년대 종합무역상사는 우리나라 수출의 50%를 담당하면서 무역 강국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제주 출신 김태형 효성굿스프링스 대표이사(58)는 7대 종합무역상사에 속한 효성물산에 입사,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페르시아 상인 상대했던 ‘중동 전문가’
김 대표는 1964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따뜻하고 유머가 있는 분이었지만, 자녀들에게는 엄하게 대했다.
그는 하귀초등학교와 제주중앙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26회)에 이어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에너지CEO과정을 이수했다.
1989년 효성물산에 입사한 그는 80여 개국을 누비며 세일즈에 나섰다. 당시 효성그룹의 주요 수출품은 철강과 섬유, 발전기 설비였다.
그는 2001년 두바이 지사장으로 나갔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속한 7개 부족 국가 중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은 4%에 불과한 반면, 아부다비는 95%를 차지했다.
김 대표는 “두바이는 1980년대 석유가 고갈됐고, 생존 전략 차원에서 금융과 관광도시를 육성하면서 황량한 사막에서 기적을 일궈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중동에만 머물지 않고 아프리카에 가서 화학섬유(폴리프로필렌)와 발전기 설비를 팔았다.
2001년 효성물산의 중동·아프리카 수출액은 1000만 달러(142억원)에 머물렀지만, 그가 두바이 지사장으로 나간 이후 5년이 되던 2006년 1억달러(1420억원)를 달성했다. 수출액이 10배나 늘어난 성과를 거뒀다.
“페르시아 상인은 장삿속이 너무 밝아서 처음 가격을 제시하면 3번은 깎습니다. 그런데 한국산 제품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갖게 된 후로는 비즈니스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중동 영업활동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란의 한 회사에 철강제품을 팔았는데 20억원을 떼이게 됐다. 회사 경비원은 부도가 났다며 회사 문을 걸어 잠궜다. 그는 담을 넘고 들어가서 사장을 만나고 설득해 미수금 전액을 받아냈다.
김 대표는 2001~2006년까지 효성그룹 두바이 지사장(과장)으로 6년을, 이어 2017~2020년까지 4년을 중동지역 총괄(상무)을 역임하는 등 10년 동안 두바이에 살면서 어느덧 ‘중동 전문가’가 됐다.
▲원자로 냉각재 펌프, 순수 국산기술로 개발
뛰어난 영업실적을 거둔 그는 동기보다 차장·부장 승진을 2~3년이나 앞서갔다.
40대 중반에 상무보로 진급, 임원이 됐다. 이어 전무로 승진했으며, 2021년 1월 효성굿스프링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효성굿스프링스 창원 공장에는 초대형·초고압 펌프 설비가 있다. 이 펌프는 시간당 11만t의 물을 보낼 수 있다. 이는 1000만 서울시민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김 대표는 450도의 초고온과 -195도의 극저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펌프를 개발, 발전소와 정유회사에 납품했다.
특히, 400bar(약 400기압)을 견뎌낼 수 있는 초고압 펌프는 최대 3000m까지 물을 올려 보낼 수 있다. 즉, 한라산(1950m) 보다 더 높은 곳까지 중력을 거슬러 물을 위로 쏘아 올릴 수 있는 펌프를 개발해 낸 것이다.
그는 “유럽의 펌프회사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1962년에 창업한 효성굿스프링스는 60년 역사에도 불구, 유럽산 제품을 대신해 국내 펌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굿스프링스는 1992년 영광 원전을 시작으로 2013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부속시설에 들어가는 안전·소방 펌프를 수주했다. 그동안 국내 18기, 해외 4기 등 모두 22기 원전에 총 3400억원 규모의 펌프를 납품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원전 외부와 부속시설에 들어가는 펌프를 납품했는데 최근 국내 순수기술로 원전 핵심설비인 원자로 내부에 들어가는 냉각재 펌프 생산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원자로에 국산 펌프가 설치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밝혔다.
효성굿스프링스의 정규 직원은 360명으로 연 매출액은 21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미래는 고효율·친환경 제품이 ‘대세’
승승장구했던 그도 시련이 있었다. 효성 전략본부는 미래성장 동력으로 화합물 반도체인 LED(발광 다이오드)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2007년 LED를 생산하는 담당 임원으로 발령났다.
LED산업의 핵심 소재인 에피 웨이퍼(Epi-Wafer)는 TV와 노트북, 스마트폰 화면을 고해상도를 보여주고, 화질과 발광 효율이 뛰어나다.
김 대표는 2007년 삼성과 LG전자가 생산해냈던 LED산업의 핵심 소재를 효성그룹에서도 만들어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한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를 접고, 화합물 반도체인 LED에 대해 대규모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섰다.
저가의 중국산 LED가 국내 시장에 쏟아져 들어왔다. 김 대표는 10년 동안 공들인 LED 사업을 접었다.
그런데 그는 위기에서 기회를 찾았다. 중력을 거슬러 물이나 기름을 끌어 올리는 펌프는 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뜨거운 쇳물을 다루는 포항제철의 연간 전기요금은 7000억원으로, 이곳에 설치된 다양한 펌프가 소비하는 전력 소비는 전체 전력 수요의 30%를 차지한다.
전 세계가 탄소 배출 감소를 목표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고효율·친환경 에너지 소비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효성굿스프링스는 에너지 절감을 극대화한 고효율 펌프를 개발, 국내 펌프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은퇴 후 제주청년들 취업·진로에 도움
김 대표는 은퇴 이후에는 고향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주에 귀향한 후 청년들의 취업·진로 세미나와 모임에 참석해 지역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제주 청년들은 요망지다(똑 부러지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전 세계 젊은이들은 K팝과 드라마를 보며 똑 부러진 스타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고 배우고 있다”며 “제주 인재들이 전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주고, 다양한 분야의 창업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10년 동안 중동에서 일한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중동 정치와 경제에 대한 책을 발간하고, 제주 젊은이들이 중동을 비롯해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해주겠다”며 말을 맺었다.
좌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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