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전 만장굴 탐험한 ‘꼬마탐험대’가 부활하다
2023 한산 부종휴선생 길 걷기 행사 개최
도내 초등학생 20명 만장굴 비공개 구간 탐사
세계자연유산 선각자인 고(故) 부종휴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탐험했던 만장굴의 비공개 구간을 제주지역 초등학생들이 직접 탐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가 주최하고 ㈔제주역사문화진흥원과 ㈔한산부종휴선생기념사업회가 공동 주관한 ‘2023 한산 부종휴선생 길 걷기 행사’가 지난 7일 김녕초등학교와 만장굴 일대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평생을 바쳐 제주 자원의 가치를 밝혀낸 부종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부 선생과 제자들이 탐험해 밝혀낸 만장굴을 세계유산마을 어린이들이 직접 걸으며 그 위대함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은 평소에는 동굴 보호와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공개하지 않는 만장굴 1구간의 상층부와 하층부를 탐사했다.
▲77년전 꼬마탐험대 김두전 “77년 전 감동 전해졌으면”
본격적인 탐사에 앞서 이번 행사 개최를 기념하는 개막식이 김녕초등학교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날 개막식에서는 부종휴 선생의 아들 부명제씨 등 가족들을 비롯해 77년 전 꼬마탐험대원으로 부종휴 선생과 함께 만장굴을 탐험했던 김두전 선생도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다.
개막식은 ‘제주어로 노래하는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의 식전공연과 만장굴 해설사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인화초등학교 김연서 학생의 해설 한마당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에 참가한 김두전 선생은 “이제 제가 아흔을 넘었지만 77년 전 선생님과 함께 만장굴을 탐험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며 “선생님은 자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배푸는 여유로운 성품의 소유자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오늘 만장굴 비공개 구간 탐사에 참여하는 많은 학생들이 77년 전의 우리가 느꼈던 만장굴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 선상의 아들인 부명제씨도 “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은 곳이 김녕초인데 발령받자마자 꼬마탐험대를 조직해 만장굴을 탐험했다”며 “그렇게 아버지가 학생들과 함께 탐험했던 만장굴을 오늘 학생들이 직접 탐사한다는 것에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이어 “만장굴 비공개 구간은 지금 공개되고 있는 만장굴 2구간보다는 탐사가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동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고 있을 것”이라며 “쉽게 경험하기 힘든 기회인 만큼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비공개 구간 탐사 학생들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개회식을 마친 후 학생들은 본격적인 만장굴 비공개 구간 탐사에 나섰다.
현재 공개되고 있는 만장굴 2구간은 탐방객들이 편하게 탐방할 수 있도록 정비되고 조명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비공개 구간인 1구간은 용암길 위에 낙석이 그대로 쌓여 있고, 용암이 흘러가다 굳은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등 동굴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울퉁불퉁하고 젖어서 미끄러운 용암길과 곳곳에 쌓여있는 낙석으로 인해 탐사가 쉽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은 용암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장굴 1구간 상층부는 지면과 용암동굴 사이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천장이 꽤 낮다.
그만큼 용암이 지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굴 벽과 낮은 천장이 신비함을 더해주며, 바위 틈을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들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특히 용암이 흐르면서 계곡과 같은 지형을 만든 곳도 있었는데 무거운 용암에 의해 지반이 약한 부분부터 파이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만장굴 하층부는 벽과 바닥에 용암이 흐르며 만든 유선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있었으며, 흐르던 용암이 쌓이면서 선반처럼 튀어나오는 이른바 ‘용암선반’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만장굴 탐사에 참여한 현예나양(인화초4)은 “솔직히 길이 좋지 않아 탐사가 힘들었지만 77년전 꼬마탐험대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며 “어둡지만 신비로웠던 동굴을 탐사하면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강시열군(제주교대부설초6)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동굴이 너무 어두워 무섭고 떨리기도 했지만 소중한 경험이 된 것 같다”며 “나중에 다시 동굴을 탐사할 기회가 생기면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계자연유산의 선각자 부종휴 선생과 꼬마탐험대
부종휴 선생은 1926년 구좌읍 세화리에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해 음악교육을 전공한 부 선생은 1945년 김녕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교육자이자 음악가, 동굴 탐험가, 식물학자, 산악인,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부 선생이 김녕초 교사로 부임한 직후인 1946년 5~6학년 학생 30여 명과 함께 꼬마탐험대를 조직, 4차례에 답사 끝에 동굴 전 구간을 탐험했다.
당시 부 선생과 꼬마탐험대는 제대로 된 조명이나 장비도 없이 횃불에 의지해 최초로 만장굴을 탐험,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만장굴의 실체를 세상에 알렸다.
특히 이들은 단순한 탐사에 그친 것이 아닌 줄자를 이용해 동굴 전체의 길이를 측정하고 동굴의 입구와 중착지의 위치까지 확인했다.
탐험을 마친 부 선생은 길다는 의미의 만(万), 동굴의 끝인 만장굴 제3 입구의 옛 이름인 ‘만쟁이거멀’에서 장(丈)자를 달아 만장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편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만장굴은 총 길이 7.4㎞, 최대 높이 23m, 최대 폭 18m로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2007년에는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김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