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인물 대하실록) 인기만큼 파란만장한 삶 살다간 70년대 대표 배우
오수미, 남편 납북·동생 실종으로 방황…하와이서 교통사고로 사망
▲오수미吳樹美:1950(분단시대)~1992, 영화 여배우, 본명은 윤영희(尹英嬉), 영화감독 신상옥(申相玉)의 부인.
제주시 건입동(건들-개)에서 태어나 신성여고를 졸업했다.
1973년 영화 ‘이별’의 프랑스 로케 때에 신상옥(申相玉) 감독과 결국 부부가 됐다.
신(申)감독과의 사이에 아들 상균, 딸 승리를 둔 그녀는 1992년 6월 30일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비운의 스타였다.
1978년 신상옥이 납북(拉北)되면서 프랑스 교포 사진작가 김중만(金重晩)과 다시 결혼하였다. 이로써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됐으나 1986년 3월 신상옥과 최은희(崔恩姬) 두 사람이 북한을 극적으로 탈출하자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감당하지 못해 김중만과도 헤어졌다.
80년대 말 대마초 흡연사건에 휘말리는 등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기도 했다.
이후 두 자녀를 신상옥, 최은희 부부 슬하에 입적시키고 독신으로 지내왔다.
오수미는 하와이에서 친구 부부와 함께 승합차를 타고 가다가 브레이크 파열로 낭떠러지로 추락, 그 자리에서 숨졌다.
죽음이 6일이나 지나 알려지게 된 것은 오수미의 신상이 현지 경찰에 의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42년에 걸친 우여곡절 인생은 어느 슬픈 영화보다 비극적이어서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했다.
국내의 영화배우협회(회장 남궁원·南宮遠)도 임원을 파견, 시신은 서울로 운구(運柩)돼 영화배우 협회장(協會葬)으로 치렀으며 제주도 황사평(黃蛇坪)의 천주교 묘역에 안장됐다.
지난 70년대 한때 인기를 누리기도 했으나 신상옥 감독의 납북, 유명 모델이던 동생 윤영실(尹英實)의 실종, 대마초사건 등으로 잇따라 시련을 겪은 비운의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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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인기만큼 파란만장한 삶 살다간 70년대 대표 배우 - 제주일보
▲오섬吳暹:1585(선조18)~?, 문신, 강원도감사, 자 퇴이(退而), 본관 군위.제주시 아라동(아라위)에서 효자 오몽열(吳夢說)의 아들로 태어나 1618년(광해군10) 사마시에 급제했다.1623년(인조1)에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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