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의 제주여행] 순교로 고국 땅에 천주교의 씨앗 뿌려…
성지순례 김대건 길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풍랑 만나 표류하다 용수리에...기념관·기념성당 등 성지 조성
김기량·정난주 발자취 곳곳에...기적 일군 맥그린치 신부 흔적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직자인 김대건 신부가 서해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도착했던 곳이다.
1845년 여름,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고 일행 13명과 함께 배를 타고 귀국하던 길이었다. 신부 일행은 이곳에 내린 후 고국 땅에서의 감격스런 첫 미사를 봉헌한다. 이를테면 용수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최초의 미사를 올린 곳인 셈이다.
천주교 역사엔 의미가 커서 용수리 포구 일대가 성지로 조성돼 있다. 김대건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성당이 들어서 있고 신부 일행이 중국에서 타고 왔던 라파엘호도 원형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용수성지 외에도 용수리 올레길 구간 주변에는 순례자의 집, 예루살롐 교회, 순례자의 교회 등 종교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들이 많다.
올레 11코스에서 만난 정난주 마리아의 삶은 제주에 유입된 천주교 초기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해당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7년 뒤 김대건 신부가 표착해 섬에 잠시 발을 들였고 다시 13년 뒤인 1858년 어부 김기량이 제주인 최초로 세례를 받는다.
이런 역사를 거치며 1899년 제주에 최초의 교회 공동체가 설립됐고, 1977년에 이르러 천주교 제주교구가 정식으로 설정된다.
제주 섬에는 이런 천주교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따라 걷는 성지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총거리 85㎞에 6개 코스인데 이들 중 첫 번째가 ‘김대건 길(12.7㎞)’이다. 신부 표착지인 용수리 포구를 중심에 두고 남쪽의 고산성당에서 북쪽의 신창성당까지를 연결하고 있다.
올레 12코스 후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월봉입구 교차로~차귀도 포구~용수리 포구’ 구간과 겹친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2012년 9월 ‘김대건 길’ 개통을 시작으로 이후 5년 동안 매년 하나씩 총 5개 순례길을 추가했다.
이듬해인 2013년 개통한 하논성당 길(10.6㎞)은 제주 산남지역 최초의 본당이 자리했던 곳을 지나는 코스다.
서귀포성당에서 출발해 이중섭거리, 면형의집, 하논성당터를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서귀포성당 주변과 이중섭거리 구간이 올레 6코스와 겹친다.
김기량 길(8.7㎞)은 제주인 최초의 세례자이자 순교자인 김기량의 자취를 더듬는 길이다.
그의 고향 함덕에서 출발해 신흥포구와 연북정 비석거리를 거쳐 조천성당까지 이어진다. 조천, 신흥, 함덕 해안을 지나기 때문에 올레 18코스와 거의 전구간이 겹친다.
정난주 길(7㎞)은 대정성지 정난주마리아묘에서 출발해 모슬포 성당까지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와 대정향교를 거치고 4·3사건과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섯알오름 위령탑과 알뜨르 비행장을 만나기도 한다. 올레 10코스, 11코스와 부분적으로 겹친다.
신축화해 길(12.6㎞)은 이재수의 난 당시 희생된 300여 교인들을 기리는 순례길이다. 희생자들이 묻힌 황사평성지를 출발해 화북성당과 사라봉, 관덕정을 거쳐 중앙성당까지 이어진다. 올레 18코스 절반에 가까운 관덕정~사라봉~화북포구 구간과 겹친다.
여섯 번째 마지막으로 개통된 이시돌 길(33.2㎞)은 아일랜드인 맥그린치 신부가 개척한 이시돌목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길이다. 시작점인 성이시돌센터 전시관에서 세 갈래 길로 나뉘어지며 한경면 고산성당까지 이어진다.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에 제주 한림공소로 부임해와 평생을 제주인으로 살다가 2018년 9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올레 13코스와 조수 월림 근처에서 살짝 만나고 헤어진다.
용수리 해안에 표류해왔던 김대건 신부 일행은 포구에 잠시 머물며 배를 수리한 후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며칠 항해 끝에 서해안 군산 앞바다를 거쳐 금강 하구 나바위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고, 그리곤 육로를 거쳐 용인으로 올라가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용인은 그가 자라난 제2의 고향이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지만 증조부가 순교한 후 조부가 가족을 이끌고 용인으로 이사 온 때문이다.
그러나 용인에 돌아온 후 조선 최초의 목회자로서의 삶은 1년을 넘기지 못한다. 이듬해인 1846년 가을, 외국 선교사를 도우려다 관군에 붙잡히곤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한 것이다. 그의 나이 25세였고, 중조부에 이어 부친까지 순교한 지 7년 만이었다.
‘은이로’, ‘은이빌라’, ‘은이뜰마트’, ‘은이골’….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일대에서 만나는 이름들이다. 얼핏 겉으론 정겨운 우리말 지명 같지만 ‘은이(隱里)’란 한자 이름엔 천주교 역사의 상흔이 깊숙이 녹아 있다.
한자 뜻 그대로 ‘숨겨진 마을’이다. 200여 년 전 천주교 박해시기에 초기 신도들이 이 지역에 숨어 살았던 것이다. 8살 김대건 소년의 가족도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이후 24세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고 이듬해 순교하기까지의 자취들이, 경기옛길 영남길의 6코스 초입인 은이성지 ‘김대건기념관’에 오롯이 모아져 있다.
은이성지는 인근 돌배마실로 이사와 살고 있던 소년 김대건이 우리나라 첫 신부로 성장하기까지의 발판이 된 곳이다. 1836년 이곳에서 피에르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았고 이어서 신학생으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이곳 은이성지에서 삼덕고개를 넘어 미리네성지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용인 성지순례 너울길’로 불린다. 중국에서 제주를 거쳐 이곳으로 돌아온 김대건 신부가 안성이나 이천 등 인근 지역으로 사목활동을 하러 교민들을 찾아나섰던 길이다.
또한 한강 백사장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 신부의 유해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미리내성지에 묻히기까지 비밀리에 운구돼 온 산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해서 이 구간은 ‘삼덕의 길’로 일컬어진다.
천주교 신앙에서 ‘주를 향한’ 마음가짐을 이를 때 말하는 믿음(信), 소망(望), 사랑(愛)이 곧 삼덕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이 은이고개, 해실이고개, 오두재였던 성지순례길 세 고개의 이름은 그런 연유로 언제부턴가 신덕(信德)고개, 망덕(望德)고개, 애덕(愛德)고개로 바뀌어 불려왔다.
제주도 한경면의 ‘제주올레 12코스’와 ‘성지순례 김대건 길’, 그리고 경기도 용인의 ‘경기옛길 영남길 6코스’와 ‘용인 성지순례 너울길’, 한반도의 4개의 길이 25세에 순교한 한 종교인의 삶으로 연결이 된다.
물론 종교인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도 멀지 않은 우리 역사에서 신념 때문에 핍박 받고 희생된 이들을 숙연하게 돌아보게 해준다.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의 기회로도 연결이 되는 것이다.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6654
가을 바다 유영하는 돌고래 - 제주일보
28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 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때를 지어 유영하고 있다. 고봉수 기자
www.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