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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공동체 정신의 상징 '백조일손 역사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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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2024. 8. 1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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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 묘역에서 문 열어...위패봉안실.자료실.전시실 등
오영훈 지사 "제주4·3, 화해와 상생의 가치 미래 세대에 전달 최선"

 

제주4·3의 비극과 고난을 공동체 정신으로 승화한 '제주예비검속 백조일손 역사관'이 개관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에서 지난 10일 백조일손 역사관 개관식이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백조일손유족회(회장 고영우)는 지난 10일 서귀포시 대정읍 백조일손 묘역 인근에서 역사관 개관식과 제74주기 백조일손·행방불명인 영령 합동위령제를 봉행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오영훈 지사와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위성곤 국회의원,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백조일손 역사관은 331㎡ 규모의 단층 건물로 영상실과 위패봉안실, 자료실, 연구실 등을 갖췄다.

앞으로 예비검속부터 백조일손 유족회의 진실규명 활동에 이르기까지 섯알오름 양민 집단 학살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공간으로 활용된다.

오영훈 지사는 “백조일손 묘역은 모두가 하나의 자손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슬픔을 이겨낸 공동체 연대의 상징”이라며 “백조일손 역사관은 희생자 추모 공간이자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기념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4·3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제주4·3의 화해와 상생의 가치가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일본군은 섯알오름 일대에 알뜨르비행장과 동굴진지, 고사포진지를 구축했다. 또 섯알오름 내부를 깊게 파낸 후 탄약고를 조성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은 탄약고를 폭파하면서 오름 절반이 무너지고 큰 구덩이가 생겼다. 이 구덩이는 제주4·3사건 당시 양민들을 집단 매장한 학살터로 이용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계엄당국은 4·3당시 중산간에 피신했다가 자수한 양민 등 820여 명을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강제 연행 후 구금했다.

모슬포경찰서 관내 한림·한경·대정·안덕지역에서 252명이 연행됐고, 이 중 132명은 1950년 8월 20일 새벽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 끌려가 총살당했다.

희생자 중에는 공무원, 교사, 학생, 농민, 우익단체장도 있었다. 당시 군인들은 민간인들을 섯알오름 구덩이에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한 후 돌무더기를 쌓아 암매장했다. 군경은 6년간 이곳을 출입금지 지역으로 설정, 유해 수습을 막았다.

1956년 군부대 확장 공사로 일부 유해가 드러나면서 사건 발생 6년 만인 1956년 6월 유족들은 허가를 받고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희생자 132명의 유해는 누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유족들은 발굴된 뼈를 추슬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유족들은 132구의 시신을 한곳에 안장한 후 비문에는 ‘조상은 100명이 넘되 자손은 하나’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는 비석을 세웠다.

제주도는 2005년 섯알오름 학살터를 4·3주요 유적지로 지정했고, 2006년부터 학살터 부지를 매입해 추모시설을 건립했다.

학살터에서 진행된 유해발굴에서는 희생자의 유골과 의류, 신발에 이어 실탄 1700여발이 나왔다.

 

좌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