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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76년의 세월…애끓는 사모곡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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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2024. 4. 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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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권씨, 1949년 2월 성산포 터진목 학살터 유일한 생존자
생후 17개월 당시 기적적으로 생환...눈물과 한, 버티며 살아와

 

“제주에 사는 저의 동년배들은 4·3으로 절망과 분노를 겪었지만, 그 모진 세월을 눈물과 한으로 버텨내고 살아왔습니다.”

제주4·3 76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서귀포시 성산읍 터진목에서 만난 오인권씨(제주시 화북동·77)는 생후 17개월 당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를 꺼냈다.

오인권씨가 지난달 30일 성산읍 터진목에서 4·3희생자 추모비에 새겨진 어머니(현정생) 이름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성산읍 난산리가 고향인 오씨의 아버지(오명언)는 당시 성산포지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다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주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겠다며 사직 후 피신생활을 했다.

이로 인해 좌익세력으로 낙인찍힌 오씨와 그의 어머니(현정생)는 1949년 2월 1일 터진목에 끌려갔다.

어머니 품에 안긴 그는 양 팔과 가슴에 총탄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4·3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총살된 주민은 모두 212명이다. 오씨는 유일한 생존자로 기록됐다.

썰물 때면 성산일출봉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터진다(이어진다)는 의미로 ‘터진목’이라 불리는 이곳은 현재 해돋이 명소이지만, 70여 년 전에는 서북청년단 특별중대가 양민을 즉결 처형하기 위해 끌고 갔던 ‘죽음의 길목’이었다.

핏빛으로 물든 모래밭에서 살아남은 오씨는 성산리에 사는 양어머니에게 맡겨졌다가 할머니 손에서 성장했다.

그는 “부모님의 부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단했다”며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회고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중학교까지만 다녔던 그는 살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10대부터 화장품 외판원, 건설현장 막노등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지금은 손자·손녀를 돌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오명언) 유해는 4·3당시 사형장으로 불렸던 최대 학살터인 제주공항 암매장지에서 2014년에 발견됐다.

현 제주공항 활주로 일대에는 1949년 6월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수형인과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을 당한 388명의 유골(발굴기준)이 나왔다.

양쪽 팔뚝에 총탄 자국이 선명한 오씨는 현재 4·3생존희생자 후유장애인협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4년 창립 당시 4·3후유장애인은 15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절반인 78명이 생존해 있다”며 “70년 전 죽창에 찔리고 총탄에 맞고도 살아남았지만, 대다수는 상처가 아물어서 후유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고령 유족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좌동철 기자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0076

 

“시신도 찾지 못한 아버지...억울한 죽음 잊혀져선 안돼” - 제주일보

제76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과 행방불명인 묘역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유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유족들은 4·3 당시 희생된 가족들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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