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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유해 '대전 골령골'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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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2023. 9. 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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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전 자수 후 행방불명된 고(故) 김한홍씨 신원 확인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잠들어...제주도, 내달 5일 봉환

제주4·3사건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의 신원이 74년 만에 대전 골령골에서 확인됐다. 도외지역에서 4·3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5일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6·25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학살터인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 결과, 4·3 당시 행방불명된 고(故) 김한홍씨로 밝혀졌다.

6·25전쟁 당시 최대 민간인 학살터인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주다크투어 제공

조천읍 북촌리가 고향인 고인은 1948년 4·3이 발생하자,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중산간에서 숨어 지냈다.

유족들은 1949년 1월 말 군경이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 준다’는 선무공작에 고인은 자수를 했지만, 주정공장 수용소에 구금된 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수형인 명부에는 김씨가 1949년 7월 4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사실이 기록됐다.

대전 골령골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사이에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대전·충남 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돼 암매장된 곳이다.

4·3당시 제주에는 형무소(교도소)가 없었다. 군사재판으로 중형인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300여 명의 도민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제주도민 외에 국민보도연맹원, 정치범 등 재소자와 민간인 7000여 명이 총살당한 후 암매장됐다. 1992년 12월 말 미국 기밀문서가 해제돼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희생자들이 묻힌 1~8학살지 구덩이를 연결하면 1㎞에 달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대전 골령골에서는 올해까지 1441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제주도는 이 중 70구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벌인 결과, 1학살지에서 발굴된 4·3희생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했다. 고인은 세종추모의집에 안치됐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은 타지에서 74년간 잠들어 있던 희생자를 최고의 예우로 고향으로 맞이할 계획이다.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10월 4일 제주4·3유족회 주관으로 세종은하수공원에서 화장한 후 10월 5일 항공기로 봉환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이날 고향으로 돌아온 유해에 대한 봉환식을 거행하고, 희생자를 위령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신원확인 보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도외지역에서 행방불명 4·3희생자의 신원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돼 무척 뜻깊다”면서 “광주·전주·김천 등 도외 행방불명인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 사업도 타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군사재판과 일반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전국 15개 형무소에 수감된 수형인은 각각 2530명과 200여 명 등 모두 2700명이 넘는다.

1950년 5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문이 열린 마포형무소에 수감된 4·3수형인 309명 중 대다수는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4·3 여성수형인 70명은 월북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인천형무소에 있던 250여 명의 4·3수형인들은 수원 방향으로 피난 갔다가 의용군에 끌려가거나 국군에 체포됐다.

대구형무소 수형인은 경산 코발트광산과 거창댐에서, 목포형무소 수감자는 목포 인근 바다에서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6·25전쟁 당시 군경은 재소자들이 좌익에 동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집단 총살 후 암매장했다.

좌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