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 4·3 피해 증언마당 두 번째 이야기 개최
제주4·3 당시 도내 불교 혁신에 앞장섰던 스님들과 불교계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불교계 4·3 진상 규명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탐라성보문화원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4·3특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주불교 4·3 피해 증언마당 두 번째 이야기’가 6일 오후 6시 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된 이날 증언마당에는 영축사 광수 스님과 선광사 수열 스님, 김동호 전(前) 초등 교장이 증언에 나서 각각 4·3 당시 부악사와 한경면지역 피해, 선광사와 남원지역 피해, 월정사에 주석(승려가 포교하기 위해 어떤 지역에 한동안 머무르는 것)하다 총살당한 덕수 스님에 대해 증언했다.
광수 스님은 “4·3이 발발한 1948년 10월 20일 해안선에서 5㎞ 이상 지점과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가 포고되고, 이를 위반하는 자는 이유 여하 불문하고 총살한다고 포고됐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제주시 한경면에 있던 부악사 월봉 스님은 하루빨리 해안마을로 내려가야 한다는 동생의 말을 들은 뒤 모셨던 부처님(목조여래좌상)을 등에 짊어지고 판포 통천사로 피신했다”며 “결국 토벌대에 의해 부악사는 불 질러졌고, 폐사하기에 이르렀다”고 증언했다.
수열 스님은 “남원 선광사는 대부분 사찰이 초가법당인 데 반해 기와법당이라는 대작불사를 이뤄 장엄했지만, 4·3 발발로 표적이 됐다”며 “토벌대는 목재가 좋은 것이라는 이유로 불 지르지 않고 해체했으며, 당시 흙으로 만든 불상은 파손됐다”고 했다.
이어 “그때는 면장이나 이장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며 “선광사를 건립했던 부친도 마음으로만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법당에 흙으로 조성된 부처님은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시기 어려워서 그런지 훼불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초등 교장이던 김동호씨는 “4·3 당시 오라리 마을주민 2000여 명은 1948년 5·10 총선거를 거부해 산으로 피신했고, 같은 해 11월 초토화 작전에 따라 토벌대의 무차별 공격이 감행됐다”며 “주민들은 낮에는 산으로 숨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해야만 했는데, 그해 12월 오라리는 토벌대의 대대적인 집단학살이 자행됐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당시 월정사도 토벌대에 의해 건물 5채가 불타올랐고, 월정사를 지키던 김덕수 스님은 단지 월정사에 있었다는 이유로 주민들과 함께 박성내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고 했다.
한권 도의회 4·3특별위원회 위원장은 “4·3의 아픈 역사와 숨은 진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기억세대의 용기 있는 증언 덕분”이라며 “증언마당을 통해 제주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제주불교의 높은 뜻이 알려지고, 민중과 함께했던 스님들의 발자취와 사회 참여 정신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진유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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