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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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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2022. 1. 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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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당선작
웃는 남자
정의양

 입이 딱 벌어졌다. 사람의 뒷모습을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다.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를 바라본다. 운해 속에 피어난 연꽃 위에 결가부좌 한 선승의 참선하는 뒷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삭발한 머리는 달빛에 파르라니 빛나고, 가녀린 목선을 따라 등판으로 흘러내린 장삼이 구름과 어우러져 바람을 타고 하늘은 난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스님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내 얼굴을 생각한다.

“얼굴 좀 펴라”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남들처럼 눈 코 입 하나 빠진 거 없는 외모이기는 하나 표정이 없어 그게 문제다. 아마도 삼신할미가 생명을 점지하고, 마지막 미소 한 줌 훅 뿌려주는 의식을 깜박하신 듯하다. 까무잡잡하고 짧은 머리에 비쩍 마른 얼굴, 날카로운 눈매와 콧잔등에 흉까지 있으니 누가 봐도 불편한 얼굴이다. 만남에 있어 첫인상이 중요한데 밝은 표정에 서툰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평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 딴에는 웃고 있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좀 더 활짝 웃으라고 한다. 우거지상을 한 것도 아니고, 본래 내 모습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뭔가 편하지 않나 보다. 자연스레 웃어보려고 하다가 더 어색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칠십 년대만 해도 외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직행버스를 타면 으레 검문을 했다. 버스가 정차하고 앞문이 열리면 각 잡은 군복에 모자를 눌러쓴 헌병이 차에 올라 거수경례를 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그는 통로를 따라 걸어오며 매서운 눈초리로 양쪽 승객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내 앞에서 군홧발 소리가 딱 멈췄다. 헌병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순간,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며 큰 죄라도 진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헌병의 싸늘한 눈초리는 내 얼굴과 신분증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는 사람을 인상이 굳었다는 이유만으로 불심검문을 받는 것이 매우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그날 이후 직행버스만 타면 아예 신분증을 앞자리 손잡이에 꽂아 두었다. 신원조회를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둔 채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어디 그뿐인가 밤늦게 점퍼를 걸치고 술집에 들어서면 심야 단속 나온 형사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때로는 시키지도 않은 술안주가 서비스로 나오는 일도 있었다. 가끔 혼자 생각에 잠겨 있으면 ‘무슨 일 있냐’는 질문을 받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웃어보려고 시도를 했다. 웃음 교정법을 공부하고 미소가 멋진 남자 사진을 거울에 붙였다. 매일 손바닥으로 볼을 문지르며 경직된 근육을 풀어 주었다. 양손으로 아래턱을 감싸고 입을 크게 벌려 “아, 에, 이, 오, 우”를 반복하며 턱의 긴장도 풀었다. 복어처럼 입안을 부풀려 오른쪽 왼쪽 위아래로 열심히 근육을 움직였다. 입술 꼬리를 잡아당기며 “개구리 뒷다리”를 외쳤다.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거울 속 내 모습이 점점 낯설게만 느껴졌다.

우연히 템플스테이에 간 적이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명상을 통해 내 삶을 뒤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 공양을 마치고 108배 체험이 시작되었다. 죽비 소리에 맞춰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는 동작을 반복했다. 절하는 횟수가 점차 늘어 갈수록 잡념은 간곳없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마지막 절을 하고 일어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웃네.”

아내가 신기한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편안해.”

땀에 젖은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며 대답했다. 아내가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매일 아침 아내와 108배를 올린 지도 십 년이 넘었다. 하루를 열어가는 소중한 시간, 무념에 빠져들어 절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했다. 절을 한다는 것이 몸과 마음에 얼마나 큰 변화를 주는지는 알 수 없다. 신기한 것은 날이 갈수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표정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새벽 5시. 새날이 밝아오는 시간이다. 아내와 나는 거실에 방석을 깔고 절을 한다. 두 손을 합장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며 마음을 숙인다. 20여 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등줄기에 땀이 배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귀에 들리는 매미 소리, 코끝에서 느껴지는 습한 바람, 눈을 감아도 만물이 온몸에 스미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그림 속 선승의 뒷모습이 편안해 보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어둠이 물러난다. 하늘에 있는 달과 별이 마지막 빛을 비추는 시간이다. 곧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동쪽 하늘 언저리가 붉게 물들며 지극한 마음자리에 해가 솟는다. 나는 아내를 향해 빙긋 웃는다.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